어느 날 내가 루게릭병에 걸렸다면?
뜬금없는 질문에 깊은 고심을 해본다. 솔직히 상상이 안 간다. 또한 상상도 하기 싫다. 다른 질병도 아닌 루게릭병... 그것만큼 고통도 없을 것 같다. 물론 다른 질병 역시 고통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다. 다만, 내 몸을 내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다면 정말 절망적일 것이다.
그럼에도 희망의 끈은 있다!
얼마 전 미 FDA은 루게릭병으로 불리는 '근위축성 측색 경화증' 치료제로 '렐리브리오(Relyvrio)를 승인했다. 물론 이 치료제가 완치제는 될 수 없다. 하지만 완치제 개발에 한 발씩 앞장설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렐리브리오
미제약사 아밀릭스(Amylyx)가 개발한 루게릭병 경구용 치료제로 영양관을 통해서도 투여할 수 있다. 처음 3주 동안 페닐부티르산나트륨 3g과 타우루르소디올 1g으로 구성된 렐리브리오 1포를 매일 복용하며, 그 이후에는 하루 두 번 1포씩 복용한다.
렐리브리오의 안정성 논란
미 FDA의 입장은 루게릭병 환자의 생존 기간을 연장하고 안정성에도 문제가 없다고 했으나, 렐리브리오에 대한 요약보고서에는 '효과 근거에 대한 불확실성이 남아 있다'라고 했다. 그럼에도 심각하고 생명을 위협하는 ALS 특성 등을 감안해 이 정도 수준의 불확실성은 수용할 수 있다는 의견을 모으며, 위험보다는 이점이 더 크다고 했다.
렐리브리오는 아직 2상 임상시험 결과만 나온 상태이다. 미 FDA 자문위원이자 렐리브리오 승인에 반대한 국립보건원 케네스 피쉬벡 박사는 뉴욕타임스를 통해 회사는 더 나은 근거 자료를 기다리면서 무료로 환자들에게 치료제를 제공할 수 있지만, 그들이 약을 판매하도록 허용하는 근거기준에는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루게릭병이란?
근위축성 측색 경화증(ALS)은 퇴행성 신경 질환으로, 원인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희귀 질환이다. 대뇌 및 척수의 운동신경원이 선택적으로 파괴되기 때문에 '운동신경원 질환'이라고도 한다.
대표적인 불치병으로 불리는데, 증상은 초기에는 사람마다 다양하게 나타난다. 하지만 결국은 온몸이 마비되어 대개 침대에 누워 일상생활을 해야 하는 상태가 되고, 음식에 관을 연결하여 영양분을 주입받거나 자가호흡이 어려워져 호흡기에 의존하게 된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호흡근의 움직임마저 멎게 되는 호흡부전으로 사망에 이르지만, 사실 호흡 자체는 호흡기 등에 의존하기에 보통은 흡인성 폐렴, 즉 음식물 등이 식도가 아닌 기관지로 들어가 생기는 폐렴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많다.
발병 원인
10만 명당 1~2명이 발병하는 희귀병으로, 약 10%의 환자가 가족력 혹은 유전자 이상으로 인한 유전성 질환으로 판단되며, 나머지 90%의 환자는 원인불명으로 알려졌다. 미국에는 3만 명 정도의 환자가 있는데, 매해 5천 명 정도로 새로 진단을 받는다고 한다.
뇌의 세포핵 내 존재해야 하는 TDP-43 단백질 등이 ALS환자의 경우 세포질에 축적되어 신경세포가 손상되고 퇴행이 일어난다는 정도만 알려져 있을 뿐, 다른 원인 또는 근본적 원인은 명확히 밝혀진 바가 없다.
ALS에 관여하는 단백질은 25종 정도이며, 전측두엽성 치매의 발병 기전과도 연관되어 있다고 본다.
성별에 따른 비율
남성이 여성보다 조금 더 많고, 주로 50~70대의 중장년층 및 노인층에서 나타나지만, 젊은 환자들도 있다. 아주 드물게 10대 이하 어린이에게도 발생한다.
유전적 요인
전체 환자 중 약 10%의 환자가 가족성 ALS를 앓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중 약 20%에서 21번 염색체에서 유전자 돌연변이를 확인한 바 있고, 가족성 루게릭에 관여하는 유전자는 9개가 확인되었다.
환경적 요인
중금속, 전자파, 유기용제 등에 심하게 노출되었을 경우이나 이는 추정에 불과하다.
루게릭병 환자의 인지능력
자율신경이나 감각신경은 이상이 없다. 그래서 정신이나 감각에는 큰 이상이 없지만, 실제로는 약 50%의 루게릭병 환자에게서 인지장애가 보고된다고 한다.
대부분 환자의 초기 증상
젓가락 잡기가 어렵고 무거운 물건을 들 수 없다.
손과 발을 들어 올릴 수 없고 달릴 수가 없다.
쉽게 피로해지고 손발이 붓는다.
근육이 실룩거리며 통증이 온다.
손과 발의 근육이 가늘어진다.
부위별 마비 증상이 생길 수 있다.
대체로 근육이 튀면서 손이나 발의 힘이 점차 없어지고 근육이 빠지는 증상을 보이지만, 때로 사지마비 없이 언어장애나 음식물을 삼키는 기능의 이상만 나타날 수도 있다.
루게릭병은 퇴행성 질환
현대 의학으로서는 불치병이며 진행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점에서 치매와 유사성을 보이기도 한다.
루게릭병의 평균 생존기간
개인 편차가 크다. 발병 1년 만에 사망하는 환자가 있는가 하면, 20년이 넘어도 병을 유지하는 환자가 있다.
루게릭병과 만성 외상성 뇌병증(CTE)의 구별과 치료방식 분리 및 오진의 가능성
뇌 외상 시 만들어진 유독성 단백질이 원인?
루게릭병이 발병하는 직업군으로는 운동선수, 군인 등 주로 육체활동이 많은 사람들에게 생길 수 있다.
운동선수 중 잦은 부상으로 뇌진탕, 두부손상을 자주 겪는다. 그러다가 만성 외상성 뇌병증(CTE)의 병을 앓게 되는데,
CTE환자들을 검사해 보니 뇌에서 동일한 유독성 단백질이 발견되는 등 유사성이 있다고 한다. 이들에게선 유독성 단백질이 뇌뿐 아니라 척수에서도 발견되었는데, 이는 비운동선수인 ALS환자나 CTE 환자 중 루게릭병이 오지 않은 사람들에게서는 나타나지 않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CTE나 ALS 둘 다 아닌 CTEM(만성 외상성 근육 뇌병증)으로 명명하고 다르게 접근해야 하는 견해가 나오고 있다. 다만 이 연구로 이들이 루게릭병이 아니었음이 공식적으로 부인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 자료는 2010년 발표된 것이다. 현재 루게릭병 환자들은 뇌뿐 아니라 척수의 신경에서도 신경 세포의 이상이 발견되고 있다.
그럼 오진 가능성은?
전혀 없지는 않다. 다만 현재의 의술로는 루게릭병 진단을 백 퍼센트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방법
애초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질병이거니와 특별한 예방법은 없다. 다만 비타민E 영양제를 정기 복용할 경우 루게릭병 예방 효과가 있다고 한다.
루게릭병과 오인할 수 있는 양성 근육다발 수축 증후군(BFS)
증세는 루게릭병과 같아서 오인하기 쉽다.
양성 근육다발 수축 증후군인 BFS는 움직임을 조절할 수 있는 근육에 비 자발적인 수축과 경련 등의 증상이 일어나는 원인불명의 양성질환이다.
가장 흔한 게 눈꺼풀, 팔, 다리 등의 부위에서 이러한 증상이 나타나나, 사실 어떤 부위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개인마다 증상이 나타나는 부위도, 또 지속성도 다 다르다.
특징은 근육이 휴식을 취할 때 일어나며, 다른 활동, 즉 근육을 움직이면 그 증상이 멈춘다.
미국 메릴랜드 의대의 패프 교수의 연구
루게릭병은 UBQLN2 유전자의 돌연변이와 관련이 있다.
이 유전자는 잘못 접힌 단백질 등 세포 노폐물의 처리를 조절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UBQLN2 유전자가 정상인 왼쪽 세포의 적색 점들은 쓰레기 제거 경로가 잘 작동한다는 걸 보여준다. 돌연변이가 생긴 오른쪽 세포에서는 적색 점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이 연구를 맡은 패프 교수는 신경세포(뉴런)의 유전자 조절 기제라는 측면에서 많은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다고 한다.
그는 루게릭병이 마이크로 RNA의 생성과 연관성을 보인다고 했다. 마이크로 RNA는 자동차의 브레이크처럼 단백질 생성을 억제하는 조절 분자이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마이크로 RNA 중 miR-218이다.
운동 신경세포가 정상 기능을 하려면 바로 miR-218이 특정한 수위로 발현해야 한다는 추론이 가능했다.
루게릭병이 생기게 조작한 생쥐 모델 실험에서 근육 마비와 세포 사멸을 초래하는 임계점의 윤곽이 바로 miR-218과 연관이 있다.
miR-218의 발현도가 정상 수위의 36%를 초과하면, 신경 근육 접합부가 정상이고 7% 미만이면 치명적 결함이 있었다.
참고로 miR-218은 약 300개 유전자의 기능을 제어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중 다수는 운동 신경세포의 축삭돌기 성장과 근육 신호전달에 관여하는 단백질의 생성 정보를 가진 것들이었다.
이 마이크로 RNA의 발현 수위가 정상 대비 36% 밑으로 떨어지면, 신경세포 근육에 신호를 보내는 경로가 극적으로 감소했다.
마무리
앞으로 마이크로 RNA의 발현도 변화에 따라 루게릭병뿐만 아니라 조현병 등 다른 신경계 질환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희망하며, 나아가 유전자나 노화와 연관된 암 치료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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